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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책방, 책 읽어드립니다. 한중록편.

by 로토루아8 2020.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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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양육, 사랑만큼 중요한 것은?

그러나 사랑만큼 중요한 것이 일관성이라고해요.

적은 사랑을 일관되게 제공하는 것과 많은 사랑을 일관되지 않게 제공하는것중 어느것이 나을까요?

적은 사랑을 일관되게 제공하는 것이 좋음.

왜냐면 아이들은 부모의 반응을 예의주시하는 편인데 일관성이 없는 경우 아이들은 상황을 예측하기 어려워져요.

눈치보는 아이, 과민한 아이가 될수 있는 것. 공격적인 아이로 성장할수 있어요.

일관성에 대한 이적의 경험담.

차에서는 크게 노래해보라고하고 식당에 갔는데 식당에서도 아이들 크게 노래를 부르자

아이 입장에서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황이 된것같다고.

소설 애인의 애인에게 중에서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어주는 일.

예측 가능하게 행동할 때 상대방은 편안함을 느낌. 진정한 사랑은 편안함을 주는 것이 아닐까...?

사도세자라 하라. 왕세자를 폐위하고 뒤주에 가두어 죽인 사건. 임오화변.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가족사! 아들을 죽여야만 했던 영조.

아들이고 싶었던 사도세자.

아버지와 아들의 엇갈린 운명.

모든 비극을 지켜봐야만 했던 한 여인. 비운의 여인 사도제사의 아내. 혜경궁 홍씨.

역사에 남길수 없었던 혜경궁 홍씨의 한과 설움의 기록. 역사가 숨기려 했던 진실은 무엇인가!

한중록에서 한은 다양한 해석이 존재해요. 4편으로 이루어져 있는 한중록.

혜경궁 홍씨가 궁궐에 들어오게 된 과정을 담은 1부.

혜경궁 홍씨의 집안을 멸문시키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부당함을 밝히기 위해 쓴 2부와 3부.

사도세자가 어떻게 죽어갔는지 4부에 나오는데 핵심이에요.

사도세자의 광기와 죽음, 그리고 정조에 관한 기록이 있어요. 사료적 가치가 뛰어남.

한중록의 목적은 친정을 변호하기 위해 쓰인 글임.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가.. 다양한 의견을 참고후 읽어본 결과 믿을만 하다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 했던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 의도하지 않은 왜곡이 있을수 있지만

사건의 인사이더가 스스로 남긴 글. 쉽게 볼수 없는 기록이죠.

혜경궁 홍씨가 70년 세월동안 겪은 궁궐안 권력 다툼, 살인, 암투, 음모, 모함. 그리고 가족의 죽음.

아무에게도 말할수 없는 현실.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먼 훗날 써 내려가는데

가슴을 절절하게 만드는 한중록. 혜경궁 홍씨의 파란만장했던 인생과 역사적 사실이 겹쳐져 새로운 시선으로 역사를 보게 되는 책임.

끔찍한 얘기인지 몰랐다고. 소름끼치는 사도세자의 광기.

그 모습을 보는 혜경궁 홍씨의 공포와 절망감이 느껴지는 책이라고함.

왕 이야기가 중심이었던 기존의 사극. 한중록은 공주들의 이야기, 세자와의 관계등.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삶을 보여주는 책임.

단순한 암기가 아닌 한 사람의 인생을 이해하게 만들어준 책이라고함.

역사를 가까기에 좋다고.

혜경궁 홍씨는 너무 불안한 삶을 살았을거 같다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혜경궁 홍씨의 지혜가 돋보이는 책이라고.

정사에 차마 기록할수 없었던 250여년 전 참혹한 가족사. 모든 것을 지켜본 한 여인의 통한의 회고록.

1762년 임오년 어느 날.. 아버지가 자식을 임금이 세자를 죽이는

조선왕조 500년 역사상 유일무이한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는데..

임오화변은 왜 일어난 것인지 이사건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시대적 배경지식을 알아야 이해가 되는 책인 한중록.

궁중에서 청소나 나인의 세숫물 시중을 밭던 종이 무수리에요.

왕이 될 가능성이 없는 연잉군.

희빈 장씨의 아들 이윤이 왕에 오릅니다. 경종. 허약한 몸에 자손이 없음.

노론의 핵심은 4대신을 숙청하는 거임.

게장과 생감을 먹은 경종에게 인삼과 부자를 가져온 연잉군.

결국 인삼과 부자를 먹고 승하한 경종.

독살설이 나옴. 진실인지 거짓인지 실록에 나오지않지만 평생 형제 살인범 꼬리표가 따라다니게된 연잉군.

주인공 중 한 사람인 영조.

논란 많았던 영조의 즉위.


영조의 주홍글씨

1. 무수리 출신 후궁의 자식.

2. 노른의 꼭두각시.

3. 경종을 독살한 주범.

재위 기간내내 따라다니던 꼬리표.

워커홀릭인 영조.

방석을 집어던진 영조.

노론의 꼭두각시 꼬리표를 떼기 위해 펼친 정책.

탕평책이에요. 당파간의 정치세력에 균형을 꾀한 정책임.

영조 즉위 31년 영조실록에 나와있는 문구.

영조 성격이 예민해진 이유를 알아야 이해가 되는 한중록.

혜경궁 홍씨의 시선으로 쓰인 책인 한중록.

영조 후궁인 정빈 이씨가 낳은 아들.

영조의 첫째 아들인 효장세자는 10세에 하늘의 별이 됨.

42세에 영조의 둘째 아들이 사도세자임.

사도세자가 태어나자마자 원자로 삼았으며 13개월 만에 세자에 책봉함.

여기서부터 엇나가기 시작함. 세종대왕의 경우 가까운 곳에 동궁전이 있었는데

저승전이라고 불림. 왜냐면 다음 대통을 이을 세자가 사는 곳이라는 의미에요.

효장세자 독살사건의 배후로 추정되는 왕비의 처소.

저승전 옆 소주방이 인현왕후 저주하던 곳임. 왜 하필 그곳일까?!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퍼포먼스 인거같다고.

보여주기식이었던 것!!

먼 거리뿐만 아니라 경종의 나인을 보모로 둔것이 문제였음.

경종의 나인 출신 상궁이 사도세자에게 칼싸움 놀이를 가르쳤는데 문치주의 국가에서 말도 안되는 일이죠.

영조에게 혼나고 있던 10세 사도세자.

처음부터 혼난 것은 아니었어요. 두살이었던 사도세자는 60여개의 한자를 썼음.

세살엔 옳고 그름을 잘 팔파악하지 못하는 시기인데 입안에 있던 음식을 뱉고 대답한 사도세자.

기대치가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감.

갑자기 칼싸움을 하고 다니는 사도세자를 보고 그때부터 꾸중과 엄격한 교육이 시작됨.

점차 소원해지는 부자관계.

영조의 교육은 불통 그 자체였음. 어린 세자가 대답할수 없는 부분을 물어봤던 영조.

잘못한 일을 따로 꾸짖을 수는 있지만 미래의 신하 앞에서 사도세자에게 창피를 준 영조.

불길한 일에 세자를 데리고 갔던 영조. 마음의 병을 얻은 사도세자..

둘째 딸 화협옹주와 사도세자를 미워했던 영조.

밖에서 정사를 보시고 들어오실 때에는 사도세자에게 밥 먹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씻은 물을 화협옹주 거처를 향해 버린 영조.

영조의 첫째사랑

황평옹주를 볼 때는 밖에서 입으신 의대를 갈아입으셔야 보셨다. -한중록중

아들이 태어나기만 기다리시다가 또 딸이 나오니 에달파 그리하셨던지, 부왕 자애를 입지 못하니라- 한중록중.

그런데 화평옹주가 살아 있을 때는 사이가 좋았던 부자지간.

사도세자를 불쌍히 여기며 사랑으로 대했던 화평옹주.

아이를 낳다 죽은 화평옹주. 15세 대리청정을 시작합니다.



대리청정은 왕이 병이 들거나 나이가 들어 정사를 돌볼수 없게 되었을때 세자가 왕 대신 정사를 돌봄.

영조는 정치적 경험을 쌓게 한다는 이유로 대리청정을 시킴.

누이 덕분에 참을수 있었던 사도세자. 홍역에 걸려죽은 화협옹주.

왕으로서는 성군인 영조는 금주령을 내립니다.

큰 가뭄이 들거나 기근이 있을 경우 국가에서 술 마시는것을 금하는 법령임.

갑자기 사도세자가 있는 곳으로 간 영조.


사도세자 " 너희 놈들이 부자간을 화해하게는 못할지언정 오히려 내가 원통하고 억울한 말을 듣게 하였다.- 한중록중.

불타버린 전각.

변명조차 하지 않는 사도세자.

오해의 반복으로 점점 더 병들어가게 된.. 심각해지는 사도세자의 광증.

사도세자의 마지막 기둥인 영조왕비 정성왕후와 대비인 인원왕후는 같은 해에 승하를 함.

궁 밖으로 나가고 싶었던 사도세자. 능소에 참배하는날 궁 밖으로 나가는 영조.

정성왕후와 인원왕후의 능행에 따라가게 되었고, 기쁜 마음으로 간 사도세자.

능행길에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함.

사도세자의 화병이 더하여 의대증이 심하였으니 어떤 때는 너무 심하게 그리 하시니, 미처 만들지도 못하고 옷감도 얻지 못하면

옷을 입히던 궁녀를 죽이고 내관을 이유없이 죽이기 시작함. 하루에 여섯 사람을 살인.

약 100명이상을 살인함. 왜 사람을 죽인것이냐고 물으면

마음에 울화가 나면 견디지 못하고

어찌하여 그리하느냐?

영조 "그러면 내가 명했다 하고 세자를 잘 살피거라"

그런데 다시 멀어진 영조와 사도세자.

하루에 2~3번 문안인사를 드려야 하는 세자. 얼굴한번 비추지 않았던 사도세자.

오해가 불신이 되고 분노가 됨. 마음의 병이 더 깊어진 사도세자.

궁궐에 여승과 기생을 들여 잔치를 벌임.

누구를 해치겠다라는 말임... 심지어 임금까지..그렇게 한다면 바로 역적이 되는 거죠.

아들에게 화가 미칠까 걱정되었던 혜경궁 홍씨. 영빈 이씨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데..

처분하소서...

죽음을 예감한 사도세자는

화내던 것이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마지막 대화.

" 자결해라"

" 아버지 살려 주소서.."

결국 뒤주에 들어간 후 8일뒤 세상을 떠난 사도세자.

사도세자를 폐서인시킨 영조. 그리고 좇겨난 혜경궁 홍씨와 정조 이산.

이산을 데려가기 위해 혜경궁 홍씨를 찾아온 영조.

이때 발휘되는 혜경궁 홍씨의 현명함.

사도세자의 아들로서 왕이될수 없기 때문에 호적을 정리해야 했던 것.

이산을 효장세자의 대를 잇게한다는 영조.

사도세자의 3년상 중이었던 정조 이산. 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적해 상복조차 입을수 없었던..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사도세자의 간절한 외침.

영조의 결단이 사도세자의 반역죄로 인한 벌이라면 바로 자결하라 명할수 있었을까?

오래전부터 준비한 듯한 영조의 행동. 그런 아버지 아래 제정신으로 버티기 힘들었을 사도세자.

한중록속 사도세자의 광증에 대한 묘사.

사람이 상했다= 살인

간신히 입으면 더러워질때까지 옷 갈아입기를 거부함.

궁녀들에게 행해진 폭행.

사디즘.

사도세자의 악행으로 100명이 넘는 사상자들. 울화로 인해 저지른 살생.

그럴 때마다 혜경궁 홍씨가 느꼈을 공포.

아무리의 의미는? 혜경궁 홍씨가 순화한 표현?

실제는 직설적으로 말했을 것 같다는 이적.

자신도 언젠가 아무리의 대상이 될거라는 공포. 이런 행동으로 보아 정신 질환이 의심되는 사도세자.

후에 한중록을 토대로 한 연구를 보니 김상욱 교수가 찾아온 논문이 있음.

확증하기엔 부족한 사전 정보.

정신증은 현실 검증력이 없어요. 예를 들어 조현병같은거.

신경증은 현실 검증력이 있어요. 불안장애 같은거.

두가지 증상을 모두 보이는 사도세자. 스트레가 많으면 정신증적인 상태로 갔다가 스트레스가 즐어들면 신경증적인 상태로 지내는 거죠.

경계선 인격 장애는 비 정신증적 상태와 정신증적 상태 경게에 있는 인격장애에요.

자신에 대한 확신없음. 공격성, 자신에 대한 확신없음. 자해. 충동성.

발달 트라우마에 비롯된 결과임. 문제는 과잉보호에요.

잘못된 환경에서 성장한 사도세자는 그로인해 공동체 생활이 불가능해진 것.

사도세자의 살생을 안 영조의 물음. 속마음을 숨김없이 고백하는 사도세자.

황당한 영조의 반응.

 혼냈어야죠!

부모로서 옳고 그름의 선을 그어줘야 마땅했음.

가족비극, 권력비극.

사도세자는 왕위를 이을 유일한 혈통임. 영조입장에서는 대안이 없는거에요.

엇나가는 아들을 어찌할 방도가 없어 방관을 선택한것이 아닐까 싶다고.

왕위계승에 적격이었던 총명한 정조.

폭력행위는 1. 때리고 싶은 마음

2. 때려도 되는 환경.

사도세자의 살인욕구! 살인이 가능한 환경!

제대로 된 부모 역할의 부재가 불러온 끔찍한 결말.

아들이 갑자기 사람을 죽이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영조에겐 엄청난 충격

예를 들어 아들을 강압적으로 양육한 아버지. 세월이 흘러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아들.

그런데 힘으로 아버지보다 우세해진 아들. 아버지도 겁이 나는 거죠.

사도세자에게 공포를 느낀 영조. 훈육하기보다 본능적으로 한발 물러난 것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는 이적.

뒤주에 가둔지 8일째 되는 날 영조의 행동은 뒤주를 흔들어 사도세자의 생사를 확인함.

미동이 없자 신하를 시켜 구멍 안을 보게한 영조.



왕의 건강검진을 보통 한달에 6번 시행하는데 영조는 연간 140번 함.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둔날 정시 식사를 하고

왕으로서는 100점. 아버지로서는 낙제점.

하지만 그때 조선 백성들의 입장에서 사도세자가 왕이 됐다면?! 최악의 상황이 오지 않았을까.

이 시점에서 영조가 할수 있는 일이 없어요. 가망이 없는 사도세자. 사도세자를 폐세자하고 정조에게 왕위를 물려주자니

영조 본인이 죽은 후가 걱정인거죠.

그래서 어쩔수 없이 사도세자를 죽이는 것을 선택함.

정식 재판을 통할순 없었을까? 정조에게 붙을 죄인의 아들이라는 꼬리표.

뒤주에 가둔 것 아버지로서는 최악의 선택.. 그러나 군주로서는 합리적인 선택?!

권력이란 무엇일까.

권력의 속성.

현재도 권력이 있는 곳에서 이런 모습들이 보이지 않나요? 권력은 양분할수 없음.

권력과 분란은 뗄수없는 문제죠.

대리청정 때의 사도세자 나이가 14살임.

만 14세 사도세자 뒤에 자리한 만 55세 노련한 왕, 영조

상상만으로도 숨 막히는 상황이죠. 왕의 결정구너을 사도세자에게 넘긴 대리청정.

영조의 속뜻은?

이미 사도세자를 버린 것?!

이중속박이론은 부모가 자녀를 대할때 상반된 메시지가 동시에 다른 수준에서 제시되는 것.

상반된 두가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거예요.

이중 메시지로 듣는 이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속박함.

직장 상사중에 그런분들 있다고..ㅠㅠ

혜경궁 홍씨의 시점으로 서술된 한중록.

숙종과 숙빈 최씨의 아들로 태어난 영조. 건강이 좋지 않았던 배다른 형 경종.

형의 세력을 견제하며 목숨을 잃을 위험 속에서 성장함.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려는 영조의 노력.

영조의 한중록이 있다면 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수 있지 않을까.

너무 달랐던 두사람.

모범적인 군주 영조는 백성과 나라를 생각하는 성실한 왕임.

반면 무예와 잡학에 능했던 사도세자는 서유기, 삼국지연의등 청나라에서 가져온 최신 소설에 관심이 있었음.

신문물에 관심이 많았음. 사도세자가 죽기전 완성된 책이

삼국지연의, 서유기, 등 중국 소설의 삽화가 그려진 그림책으로

이책의 서문을 사도세자가

청룡언월도와 비슷한 칼을 소지한 사도세자는 무예에 대한 책을 집필함.

무예신보라해서 사도세자 편찬한 18기 무예에 관한 책임.

무예신보를 기반으로 당대 동아시아의 모든 무예를 집대성한 정조.

무예도보통지. 2018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됨.

왕의 자리와 다른 사도세자의 재능들. 21세기형 인재임. 그러나 영조의 바람과 달랐던. 이 같은 비극이 또 있을까..

다른 결말이지 않았을까..

안타까웠던 부자의 소통 부재.

일본에서 영조, 사도세자, 정조 3대가 사적으로 쓴 편지가 발견됨.

그중 사도세자가 쓴 편지.

자신의 심정을 담아 장인에게 보낸 편지.

소통의 부재로 인한 결과가 안타까운.. 양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을 그린 햄릿을 보면

오이디푸스왕 등 문학에서 이어져 온 친부 살해.

스타워즈 역시 아버지와 아들의 세력다툼이잖아요. 혈육이지만 라이벌이 되는 지점이 있다는 생각.

황태자를 노려보는 포트르 대제 . 땅만 바라보는 황태자.

표트르 대제 시기 시작된 러시아의 근대화. 신분을 속이고 각종 과학기술을 배워온 대제.

황ㅌ자가 마음에 차지 않았던 대제.

점점 멀어지는 부자 관계.

근대화 정책도 반대한 황태자. 급기야 대제를 피해 오스트리아로 도망을 감.

역모의 혐의로 감옥에 갇힌 황태자. 일각에선 고문을 받아 사망했다는 의견.

그때 황태자의 나이 만 28세.!

대개 부자 상속을 따르는 왕정.

체제가 갖는 한계라는 생각. 현대판 영조 교육법.

사도세자에게 조기교육을 시켰던 영조. 지금도 똑같이 벌어지는 일이죠.

지금도 영재교육에 열을 올리는 부모들이 많죠.

아이들이 성장하고 갈등이 생기면 단절되는 대화.

부모와 아이의 소통 부재가 고스란히 보이는 

탯줄이 분리되는 순간 이루어지는 육체적 탄생.

심리적 탄생은 따로 이루어진다?! 심리적 탄생은 만 3세경에 자신을 부모와 분리된 심리적 존재로 인식하는 과정임.

심리적 탄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상 항상성이에요.

애착의 대상인 부모가 없어도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것.

부모가 자신을 혼내도 부모의 선한 측면을 느끼는 상태임. 대상 항상성을 토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

대상 항상성이 발달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수 있어요. 대인관계를 맺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애착 형성 부재가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책임.

처참한 내용 속 눈길을 끈 구절.

사도세자를 아꼈던 대비 인원왕후.

아니나 다를까 맛집으로 유명했던 인원왕후전.

부엌의 책임자는 어의 이시필. 숙종의 어의인 이시필이 쓴것으로 추정되는 소문사설을 보면

일상생활에 요긴하게 쓰이는 살림법이나 편리한 지혜를 모아 정리한 책임.

사도세자 같은 어린이들이 좋아햇을 법한 음식임.

맛있는 음식을 잘 먹었는데 살이 조금 오른 사도세자.

자기관리 왕 영조에겐 못 미덥

채식위주의 건강식단을 먹었던 영조는 이해불가임.

돌이킬수 없는 부자의 갈등. 그 다툼에 엮인 비운의 여인 혜경궁 홍씨.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는가. 책의 저자인 혜경궁 홍씨.

그녀가 적었던 가슴 아픈 문장 몇개.

자신을 불행의 씨앗이라 여기는 부채 의식.

어린 정조의 바깥출입을 본 누군가.

임오화변이라는 말에 두려움을 느끼는 혜경궁 홍씨.

그때의 기억이 평생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 

차라리 병사가 나았을 거라는 안타까운 생각.

모질게 느껴질수 있는 부분이지만 당시의 상황이 혜경궁 홍씨를 그렇게 만들지 않았을까..

혜경궁 홍씨가 60세가 넘어서 쓴 회고록으로 날짜와 사건을 비교적 상세히 기록.

언젠가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던 혜경궁 홍씨.

내가 아는 진실이 다음세대로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

혜경궁 홍씨가 말하려 한 바는 무엇이었을까.

격동의 세월을 살아간 혜경궁 홍씨. 사도세자 못지 않게 험난했던 인생.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인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자기조절능력을 잃은 사도세자와 달리 노년기에도 판단력이 뚜렷했던 혜경궁 홍씨.

반면 혜경궁 홍씬느 친정, 영빈이씨, 영조, 자녀 큰힘이 되었을 지지체계.

궁극적으로 외상후 성장까지 가능하게 햇을 요인임.

열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궁으로 들어와 사랑 속의 시간도 찰나

사도세자와 영조의 갈등으로 나라와 가족의 비극을 함께 앓은 여인.

한으로 쓰인 그녀의 인생은 곧 역사였다.



<출처: tvN 책읽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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