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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는 클라스, 평화의 길, 전쟁에서 배워라, 임용한

by 로토루아8 2018.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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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전쟁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장군은 알렉산더 대왕이에요. 알렉산더가 명장이 된이유는 격동적인

전쟁 중에 내리는 판닥력 덕분인데 주어진 순간에 파고들어 어떤 결정을 내리고 단번에 밀어붙이는 힘

알렉산더는 기병대를 이끌고 맨 앞에 나섰는데 그렇게 앞에서 싸우고 있으면 전체 적인 전황 파악은 불가능해요

하지만 맨 앞에 서서 전황을 읽었던 명장 알렉산더가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쥘수 있던 이유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에 찾아온 평화의 바람 과거와 다르게 전쟁의 가능성이 옅어진 지금

전쟁에 대해 배워야 하는 이유는?

전쟁은 커녕 매일밤 전쟁같이 놀고 있다고... 전혀 전쟁에 대해 걱정이 되지 않는다고


연평도 포격사건은 2010년 11월 23일 북한이 휴전이래 최초로 민간인 거주 지역을 공격한 사건이에요.

오히려 전시상황임을 체감하지 못하는 편인 우리

전쟁에 대한 외국과 한국의 온도차만큼 심한 세대차이도 난다고

전쟁을 겪은 부모님 세대는 민감하게 만응하고 전쟁에 대한 민감한 차이가 세대갈등으로 연결됨

과민? 둔감? 그런건 중요한게 아니라고

문제의 본질은 전쟁은 왜 발생하는가?

전쟁ㅇ과 평화의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더이상의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켜내는 방법은?

왜 인류는 수천년간 전쟁을 반복할까..

한반도의 평화의 해답을 전쟁의 역사에서 찾아본다.

그렇다면 문명의 그늘이 없는 지역이라면?

어느날 콜라병 하나로 빋어진 희비극을 담은 영화로

부시맨 증후군은 외적인 자극이 없다면, 전쟁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콜라병이 없을때도 자기부족 아닌사람은 죽였어요.

역사속에서 전쟁의 원인,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전쟁이 시작된 역사, 그 시간으로 돌아가 인류가 기록한 최초의 전쟁, 그모습을 알아보자고

면적 1600제곱킬로미터로 17개의 도시와 8개의 지방 수도로 그곳에 세워진  오리엔트 최고의 문명인 수메르

200년간 전성기를 누렸던 도시국가의 몰락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시작점은 수메르에요.

이 수메르 이야기가 책에는 안 나와요. 근대에 들어 발굴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낸 수메르

이게 썩지가 않아요. 점초판 문서에 다양한 내용을 기록함

어느정도냐면 심지어 영수증까지 있을 정도임

문자를 비롯해 화려한 도시를 이룩했던 수메르

신전구역, 왕성구역, 중심부를 둘러싼 공간에 주거지역을 배치함 도시경계에는 긴 성벽을 둘러쳐 외적의 침입에 대비함


수메르인들의 특징

1. 머리와 수염 밀어 없앰

같은 지역에 사는 현재 중동 사람들과는 상반된 모습인데 최초의 문명때는 싹~

2. 밝고 선한 표정임

가짜수염이에요. 수메르에서 몇몇 사람들이 착용했던 가발과 가짜수염

왕이나 장군이 제사지낼때..

수메르 이왕 와조는 아시리아의 왕부터는 호전적인 모습을 강조하는데 수메르와 달리 눈도 살벌하게 무섭고

수메르의 첫인상은 평화롭다~

1928년 수메르의 왕실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인데 우르의 군기

저중에는 이민족도 있어요.

당시 상업과 무역업의 중심지였던 수메르~

양털과 곡식!!

사람들은 왜 양털과 곡식을 메고 있을까?

도시의 제분소 공장으로 모아서 사람들에게 배급해줌

양털도 마찬가지 대규모 공장을 통해 옷을 만들어 배급 대부분 도시민들은 곡식, 양털 공장에서 근무

부부가 일하면 1년 먹고 살 정도의 식량을 주고 그때 꼭 주는게 맥주였어요.

그래서 일하고 나면 점토판에 일한 만큼 맥주 포인트를 쌓음

물론 귀족들이나 왕은 더 풍족했겠지만.. 귀족부터 일반서민까지 신분과 직업이 카스트화된 구조임

현대의 축소판이죠. 세탁소에 부동산 중개소, 양조장 등 다양한 직업이 있음

직업 선택의 자유는 없어요. 마음대로 직업을 바꾸지 못하도록 조합을 결성하고 연예인들 직종도 정해져 있어요.

당시의 전차들은 쓰러진 사람을 밟고 지나가도록 훈련되어 있어요.

도망 못 가게 찍은 낙인이라고해요 포로의 몸에 표식을 새긴 전쟁의 포식자들

안정된 사회로 찬란한 문명을 자랑하는 곳임

한편으로는 전쟁의 광기와 살육이 지배하는 곳임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는 평화와 전쟁의 아이러니

먹고사는건 지장이 없지만... 그것만 가지고 살수 없다!!

흙집은 다 지을수 있는데.. 더 좋은 집을 짓고 싶다고.. 새로운 자원인 석재가 있어야 해요.

도시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철기를 위해서라도 전쟁이 필요했죠

처음에는 교역이 진행되더라도

교역하다가 관세를 뜯는 거죠. 그러면 전쟁이나요.

전쟁의 이유는 관세 무역 교통로에요. 그래서 무기도 수입해야 해요.

주변의 위성도시들을 거느리던 큰도시 라가시

라가시하고 움마 사이에 땅이 있는데 그 경계선이 수로로 나눠져 있어요.

어느 정도 식량이 나냐면 1만명의 군대를 1년동안 운영할수 있는 양이에요.

예상과는 반대로 움마의 압승. 위성도시인 움마가 어떻게 이길수 있었을까?

더큰 도시인 라가시에서 분석한 본인들의 패배요인?

옛날 사회주의 국가에 가면 식당에 일하는 사람이 많은데 모든 사람들에게 직업을 줘야 되니까 사람이 쓸데없이 많아요

그 좁은 식당에서 종업원 7명이 어서오세요~ 배식구부터 식탁까지 일렬도열

일은 너희 2명이 해 수메르판 구조조정을 함

적은 인구라는 약점을 인력재배치로 극복한 움마

결국 효율성으로 한계를 극복한 움마의 승리

진 라가시는 우리도 개혁하자!! 국방을 위해 군대를 늘리자~~

군대를 늘리려면 더 많은 세금이 필요하잖아요. 생활품목마다 세금을 징수함

라가시는 어떻게 됐을까?


옴마와의 전쟁에서 승리후, 기념으로 비석을 세운 라가시

독수리 전승비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병사들의 시체를 먹기 위해 몰려든 독수리~

압승으로 자존심을 회복한 라가시~ 그래서 이제 행복하게 살려고 하니까~ 웬 세금이 이렇게 많아!!

관리들을 임명해서 세금을 뜯은 권한을 줬더니

창조세금!!

높은 세금으로 사람들의 불만이 많았겠네요.

우르이님기나 라가시 귀족이 앞장서 개혁을 했는데

세금감면, 관리 축소, 군대 축소

이틈을 노리고 움마의 역공이 시작됩니다. 3차전 라가시의 참패

세금또는 전쟁으로 딜레마에 빠졌던 수메르인 2차전 승리후 관대한 처분을 내렸던 라가시

그런데 움마가 생각해보니까 다음엔 질수도 있잖아요. 움마는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릴까?

전쟁의 반복을 막기 위한 움마의 선택 도시를 파괴하고 몰살

라가시 개혁의 핵심은 옛날처럼 잘 살아보자..분명 민생을 위해 내린 결단이었지만 민생을 살리려다 민생을 잃게 된 아이러니

하루 최대 이동거리가 480km 1200년대 세계 지도를 바꿔놓은 무적의 군사

몽골군이 그렇게 무조건 죽이지는 않는데 저항하면 정말 잔인하게 죽여요

소위 찍힌 도시가 있다면 고개든 모든걸 부숴라...

상대편의 저항의지를 꺾기위한 잔인한 행동을 함

레그니차 전투는 1241년 동유럽에 침입한 몽골군이 레그니차에서 유럽 연합군을 무찌른 전투인데

3만여명의 유럽 연합군이 전멸함 국경을 넘어 파죽지세로 유럽을 정벌한 몽골

백전백승!!ㅎㅎ 대단하네요.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말을 타고 생활을 했는데 훈련이 매일매일 됨

그야말로 말과 한 몸이 될 정도로 능숙한 기마술

가벼운 차림으로 3~4일간 말을 타고 훈련

천하무적 몽골군이 16세기 이후 전쟁사에서 사라진다?

12세기 몽골 제국을 건설한 몽골 유목 기병은

금나라 공격에 신무기 화약을 도입한 몽골

원나라 건국 후 유목 생활에서 접차 멀어져감. 정착하면서 비중이 줄어들었던 유목 기병

이후 명나라에 패배 후 초원으로 돌아감

16세기 이후 국방의 중심은 군사력보단 경제력이었죠. 당시 화약 값은 상상 이상이었음

17~18세기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프랑스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프랑스군이 사격연습을 못해요. 돈이 없어서

전 세계에서 화승총을 제일 빨리 쏘는 군대가 영국인데 당시 실탄 연습을 하는 유일한 국가엿음

원료공수부터 제조까지 영국의 손안에 들어있었죠.

전세계에서 화약값이 제일 싸요


그렇다면 비슷한시기 한반도는 어땠을까?

전쟁후 훈련도감을 설치하고 조총병을 확대함

조총과 직업군인으로 군사비가 폭등했고 당시 이조판서 이경억과 호조판서 김수흥의 상소를 보면

화약값과 군인 월급으로 호조재정의 3분의 2가 군사비로 나간다고

조선은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국방비를 위해 세금을 늘렸떤 수메르

세수확보를 위해 무역과 상공업 장려해야 하지만 능본 국가 조선의 선택은?

농번기때 모일수 없는 부병제는 훈련이 불가하죠.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공격에 속수무책 당한 부병제 임진왜란 후 군 체제를 직업군인으로 전환홤

세월이 지났잖아요. 갑자기 옛날 이야기를 아름답게 포장해야죠

전쟁이 없는 상태에서 국방비는 낭비라고 착각을 함

애국심이 없거나 책임감이 없어 이렇게 하는게 아니에요.

경제 개혁 대신 군대 축소를 택한 조선

국방에 신경을 안 쓰지는 않았어요. 병인양요후 덕포진에 포대를 배치하고 하지만 배치된 것은 낡은 청동대포

하지만 당시 서양배는 철갑선임

우리 역사가 굴육을 당하는 시대가 온거죠.

미국은 3명전사 10명부상이지만 조선군은 약 400명 전사

강화도 광성보에 국력을 총동원해 만든 요새인데 그런데 무기는 오랫동안 정체되었던 거죠. 한발도 안 맞아요.

문제는 미국의 무기에요. 미군의 침략에 화승총으로 맞선 조선군

박물관처럼 너무 신기하다면서 구경을 하던..ㅠㅠ

제대로 맞은건 없고 파편에 가벼운 부상을 입은 미군..ㅠ 신미양요때 부상당한 유일한 미군

나중에 시체를 보니까 전부  총맞은데가 명중임

과연 이건 누구의 잘못일까?

국방과 경제 국가의 오랜 정체가 밎어낸 참사죠 성장은 했지만 다른 국가에비해 늦었음



<출처:  jtbc  차이나는 클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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