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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 사생활 14화 서울 근대화 1번지 정동.

by 로토루아8 2017.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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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에 전망대도 있다고해요!!


정동이란 이름은 조선시대 태조 이성계와 그의 부인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연못가에서 빨래하던 강 씨를 우연히 만난 이성계가 물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주는 강씨. 아내가 죽은 후 무덤 정릉을 도성 안에 조성해서 그때부터 정동이라고 불렀다고해요.


1920년 근대화 건물이 많은 곳이라!! 알고보고 알고 여행하면 더 의미있고 재밌는거 아시죠?

이런 건물들이 지어지면서 근대화의 출발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덕수궁 문의 이름은 대한문!!



고종이 순종에게 양위한 뒤에 머물렀던 곳이 덕수궁입니다.


1900년에 건립된 초기 근대건축물. 야자수가 어울리는 독특한 양식!


서양풍의 건축 양식에 전통 목조 건축 요소가 더해져 화려하고 이색적인 공간!!

고종이 커피를 즐기며 휴식을 취하거나 외교 사절단을 맞이하던 곳. 이름대로 덕수궁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


두번째는 1900년부터 10년에 걸쳐 지어진 석조전.


대한제국 최대의 서양식 건축물로 외관이 고급지네요.

고종의 숙소및 사무공간을 위해 건물이 지어졌지만 1910년 완공을 앞두고 일제에 넘어간 가슴 아픈 공간입니다.


각국의 서양식 공사관이 지어졌던 정동은 최신 양식의 건축을 통홰 근대화를 꿈꿔왔던 고종은 강한나라가 되고싶은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1910년 준공 당시 실제 있던 가구들이 전시되어있다고해요.



석조전은 고종의 7번째 아들인 영친왕이 주로 거처한 곳.

11살때 일제 강압으로 유학길에 오른 영친 왕은 어머니 장례식, 고종의 장례식 등에 슬픈 일이 있을때만 들를 수 있었던 비운의 공간이기도해요.

당시 자료를 검증하여 준공 당시의 모습을 재현했다고 해요.



그때 당시 그 계단 그대로라고해요.

공식행사후 만찬장소로 쓰려고 만들었지만 일제에의해... 


당시 300만(현재 가치 200여억)원으로 완공한 대한제국 최대의 서양식 건축!

고종의 이루지 못한 꿈이 담겨있어 더욱 슬프고 아름다운 석조전.


1907년 헤이그 특사 후 고종을 강제 퇴위시킨 일제로 고종이 양위하면서 

살아있지만 퇴위한 왕의 거처라는 뜻으로 덕수궁으로 불렸다고 해요.



중명전은 저렇게 떨어져있네요!! 현재는 공사중이라고해요. 

덕수궁의 화재로 고종의 임시거처로 사용되기도했고.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됐던 곳이기도해요.


먹거리 여행도 빠질수 없죠!!

메밀국수가 유명한 곳!!


메밀 함량이 높은데다 부드럽고 맛있다고 하네요.



고 이영훈씨로 옛사랑, 광화문 연가등 수많은 명곡을 남긴 작곡가.




1885년 한옥 한 채로 시작했던 최초의 예배당 정동 교회 



이화학당과 배재학당이 근처에 있어..연애당이라고...ㅎㅎ 불렸다고해요.


1910년 말에 일본에서 들어온 단어인 연애는 love를 번역해서 만들어진 신조어라고해요. 당시 연애는 새로은 사상을 타나내는 단어!



이광수가 쓴 무정에는 최초의 현대 장편 소설로 이광수의 대표작이고 근대문명, 신교육사상, 자유 연애 사상을 주장한 소설입니다.

당시 문학계의 아이돌이었던 이광수.


일본 유학 생활중 만난 최오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과 동시에 여의사인 허영숙을 만났다고해요. 요일을 정해놓고 만나기도했다고해요!! ㅎㅎ

대단하시네요~~ㅎㅎ 결국엔 허영숙을 선택하고 끝났다고 해요 삼각관계!


마지막 여행지!!!



현재 역사박물관으로 사용중!!!

정동교회 설립자인 아젠펠러가 1885년에 세운 교육기관!! 학생들은 대부분 개화한 선비들!

해외취업도 이곳에서 시작했다고해요. 정부 관료도 배출한 명문학교!!





<출처: tvn  동네의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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