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엽서에 적힌 슬프다라는 세글자. 과연 엽서를 보낸 주인공의 사연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한 한 선수가 조선에 있는 친구에게 보낸 엽서입니다. 그렇다면 엽서를 보낸 인물은 과연 누구일까?
베를린 올림픽에서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마라톤 우승을 한 전설의 마라토너. 손기정이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도 슬퍼해야만 했던 이유는?
일제강점기라 조선인이지만 일장기를 달고 시상대에 올라야 했던 것, 베를린 올림픽 이후 손기정이 꾸게 된 간절한 꿈은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것. 하지만 손기정의 간절한 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죠. 조선에 돌아오자마자 선수 생활을 은퇴해야 했던 손기정.
일본인 손기테이의 영광이라고 그건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고. 52년뒤 76세에 마침내 그 한을 풀게됩니다. 손기정은 왜 76세가 돼서야 태극마크를 달았나.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를 달고 뛰어야 했던 비운의 마라토너 손기정.
52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게 된 손기정의 영화 같은 이야기.
1936년 8월 9일 오후 3시, 뜨거운 열기로 가득찬 마라톤 경기장. 27개국 56명의 마라톤 선수와 10만 관중이 경기장에 모인 가운데 이때 비장한 눈빛으로 출발 총소리를 기다리는 한 선수!
누구보다 간절히 우승을 바라고 있었던 손기정, 대체 손기정은 어떤 역경을 뚫고 베를린 올림픽에 서게 된 것일까?
1912년 신의주.
한겨울에 영하 20도로 내려갈 정도로 추웠던 신의주.
강추위 속에서도 동네 아이들을 들뜨게 했떤게 스케이트 타기였어요. 얼어붙은 압록강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친구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손기정. 극심한 가난 탓에 비싼 스케이트화를 살 수 없었던 것. 한창 뛰어놀아야 될 어린 나이에 맨날 혼자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요. 손기정은 자신도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아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달리기에 푹 빠져 있었던 손기정, 배고픔도 잊게 만든 달리기를 할 때만큼은 가난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달리기를 좋아하는 만큼 손기정의 달리기 실력은 뛰어났을까?
학창시절부터 달리기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손기정.
전국을 제패할 달리기 유망주로 떠오른 손기정, 그런데 손기저으이 달리기 선수로서의 삶에 급브레이크가 걸립니다. 가난때문에 손기정이 상급 학교에 진학할 수 없게 된 것.
달리기 선수로 성장하려면 학교에 다니면서 육상부 같은 팀에 소속이 되어야 하는데 손기정은 생계 때문에 취직해야 했던 거에요.
유일하게 쉴 수 있는 밤에 어두컴컴한 길을 달리미 달리기 연습을 이어 나갔던 손기정. 크고 작은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서 1932년 경성,
경영 마라톤은 조선에서 난다 긴다하는 최고의 달리기 선수들이 출전하는 대회로 손기정이 동아일보사에서 주최한 경영마라톤대회에 나가게 된 것.
경영마라톤대회는 손기정이 참여한 이전 대회와는 차원이 완전히 달랐어요. 손기정의 생애 첫 마라톤 대회였기 때문. 구준히 달리기 연습을 해왔지만 마라톤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손기정.
손기정의 첫 마라톤 경기가 시작되고 자신만만하게 선두로 달려 나간 손기정. 그런데 선두에 있던 손기정이 갑자기 우뚝 멈춰 섭니다.
손기정이 멈춘 사이 그 앞을 지나쳐 앞서나간 한 선수. 사실 마라톤을 할 때는 경기 코스를 미리 알아놔야 합니다.
신의주 출신이라 경성의 자리를 쉽게 익히기 힘들었던 손기정. 코스파악이 안 된 상태로 선두에서 달리다 갈림길이 나오니 당황했던 것. 결국 선두로 치고 나가는 선수의 꽁무니만 쫓을 수 밖에 없었던 손기정.
손기정의 마라톤 데뷔전! 과연 그 성적은? 첫 출전에 2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 후에도 많은 대회에 출전하며 차근차근 경험을 쌓아나간 손기정
일제 강점기 초기에는 대회가 그리 많이 열리지 않습니다. 대형 스포츠 대회를 빌미로 조선인들이 결집할 수 있다고 생각한 일제, 1919년 3.1운동을 기점으로 일제가 통치 방식을 바꿀 필요성을 느끼고
1924년 제 5회 전국 체육대회. 1025년 제 1회 조선신궁경기대회를 개최합니다. 한편으론 운동 경기를 통해서라도 자존감을 회복하고자 했던 조선인들. 쾌조의 스타트 손기정! 의외의 곳에서 달리기를 하게 됩니다.
1930년대양정고등보통학교, 신의주에 있던 손기정이어떻게 경주에 있는 학교에 입학했을까?
무작정 양정고보 육상부 주장을 찾아간 손기정, 대뜸 경영 마라톤 2위 성적을 주장에게 들이민 것.
손기정의 달리기 재능을 보고 입학을 허락한 양정고보.
신의주에 있던 20살의 손기정이 경성 양정고보의 신입생이 된 것.
마라톤 선수가 되기 위해 정식 교육 과정을 밟게 된 손기정. 이때 손기정은 평생을 함께할 동료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손기정의 동갑내기 남승룡.
반드시 기억해 두세요.
선수들의 근력을 키우기 위해 체계적인 훈련을 시킨 양정고보. 새벽마다 산을 타며 사시사철 훈련에 매진한 손기정.
운동선수들도 힘겨워하는 속도 시속 16km. 러닝머신 속도 20km로 무려 2시간을 뛰는 마라톤 선수. 재능에 체계적인 훈련까지 받아 선수로서 쑥쑥 성장한 손기정.
경성에 있는 학교에 다니기 위해 필요한 하숙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 그런데 이때 학업 중단 위기에 빠진 손기정에게 구세주 같은 인물이 나타납니다.
선배의 가정교사로 위장해 그 집에서 같이 생활을 하게 된 손기정. 부모님 몰래 손기정을 돕기 위해 고민 끝에 생각해 낸 방법이에요. 다행히 선배의 도움으로 주거 문제는 해결했지만 또 하나의 문제가 닥치게 됩니다.
그런데 매일 달리기를 하는 손기정에겐 식사량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 유산소 종목 선수에게 매우 중요한 탄수화물과 단백질 섭취. 하루에 만 칼로리씩 먹어도 살이 안 찐다고 하네요. 허기를 이겨내기 위해 고민 끝에 누군가를 찾아갑니다.
" 이제부터 선생님을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선생님께 금전적인 도움을 부탁한 것, 선생님을 형님이라 부를 만큼 절박했던 당시 손기정의 상황.
손기정의 어려운 부탁에 선생님의 반응은 어땠을까?
당시 선생님의 급여는 보통 47원 정도인데 흔쾌히 매달 2만원 현재 약 10만원 정도를 건네며 손기정을 도와준 선생님.
위기때마다 주변의 도움으로 달리기 선수 생활을 이어 나간 손기정.
출처: 벌거벗은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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